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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제도 6년, 강사는 아파도 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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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13 11:10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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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제도 6년, 강사는 아파도 쉴 수가 없다

  • 박중렬
  •    승인 2025.05.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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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교수가 새 정부에 요구한다①
박중렬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전남대 강사

지난 2019년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 시행 이후 6년이 지나고 있다. 강사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강사제도’가 도입됐지만, 강사들은 시간강사 때보다 모든 상황이 더 악화했다고 말한다. 교육부와 국회 앞에서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농성을 벌여도 묵묵부답이다. 강사들이 말하는 현행 ‘강사제도’의 개선 과제를 일곱 차례에 걸쳐 듣는다. 

 

대학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일과 생활의 양립’을 보장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영역에 대해서는
국가와 대학 공동체가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보다 고용안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2019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하면서 탄생한 강사제도는 두 가지 점에서 역사적이라 할 만하다. 하나는 그동안 정책 결정의 주변에만 머물렀던 대학 강사가 그 주체로 인정받았던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대학, 강사단체 3자가 사회적 대화 기구인 ‘대학강사 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한 다음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의하여 이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강사를 고등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신규임용 포함 3년까지 임용과 재임용을 보장하고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하며 교수, 부교수, 조교수와 마찬가지로 ‘교육·지도 및 학문연구’를 대학 강사의 임무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강사는 비로소 시간급으로 강의료만을 받는 존재였던 시간강사에서 벗어났으며, 교육부가 5시수 이상 강의하는 강사에게 퇴직금의 70%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주당 강의시수만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2024년 대법원의 판결로 이어졌다. 

법원(광주지법)은 대학 시간강사의 근무 시간을 강의 준비하는 시간 등까지 고려해 주당 강의 시간의 3배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지난 3월 내놨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강사제도 도입 이후 6년이 지나고 있지만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라는 강사제도의 입법 취지와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일반대학의 겸임·초빙교원을 1/5에서 1/3까지 교원확보율로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였다. 그들이 고등교육법상 ‘교원’도 아닌데도 그리했다. 결국 강사들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1년짜리 비정규교수들로 채워졌다.

사립대학들도 매일반이다. 3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강사제도가 대학 내 학과 통폐합과 교육과정 개편에 걸림돌이 되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강사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대신 객원 교원, 초빙객원 교원처럼 이름조차도 생소한 이름뿐인 교원을 양산해 왔다.

강사 처우개선도 제자리걸음이긴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로 모든 교직원은 아프면 쉴 수 있도록 법이나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강사가 유급으로 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대학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돈’ 때문에 강사를 줄이고, 이상한 비정규교수 제도를 만드는 대학들이니 강사가 아픈들 신경이나 쓰겠는가. 대학 강사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대학을 떠나야 하니까.

교육의 질은 교육자의 노동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학 강사가 대학의 학문공동체를 발전시켜 왔고, 지역사회에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확산하는 주역으로서 사회적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교육·연구 노동은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대우를 못 본 척 눈감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침묵의 카르텔도 한몫을 차지한다.

노동의 가치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노동을 상품화하고 비인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사회 통합을 위협한다. 노동을 존중한다는 것, 그것은 모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출발점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의 교육·연구 노동자인 대학 강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고 대학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받을 때 ‘함께 살아가는 대학 공동체’가 온전히 유지될 것이다. 

대학 강사는 대학의 중추 연구자이자 교육공동체의 한 축이다. 이들의 삶과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학이 바로 서지 않을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대학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일과 생활의 양립’을 보장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영역에 대해서는 국가와 대학 공동체가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보다 고용안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정책을 금지하는 트럼프 정책이 문제시되고 있다. DEI는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활성화하며,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자는 이념이다. 미국의 대학·기업·정부기관에서 이를 정책의 기조로 유지해 왔는데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이를 갈아엎고 이민자를 내쫓더니, DEI를 추진하는 대학은 연구보조금을 끊어버렸다.

컬럼비아대학은 정부 압력에 굴복했다가 내부 분란을 겪고 있고, 하버드대학은 그 반대로 제 갈 길을 가겠다고 맞섰다. 미국의 시민들 또한 트럼프 탄핵을 외치며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돈으로 대학의 학문 자유를 굴복시키려는, 야만적인 반문명적 트럼피즘에 저항하는 하버드대학 같은 모습을 우리 대학에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대학 강사를 소모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고등교육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

국제노동기구는 1944년 5월 10일 제26차 회의에서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험하게 한다”라고 선언했다. 무려 80년 전 필라델피아에서의 일이다. 대학 강사제도가 시행된 지 6년째인 지금, 340개가 넘는 한국 대학 중 단 한 군데에서라도 대학 강사를 보호하고 그들의 교육·연구 노동을 존중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오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박중렬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전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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